역대하 22:10-12
10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11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12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오늘의 말씀.
축복이라는 용어를 자칫 잘못 사용하다 보면, 기복신앙이라는 단어로 변질될 수 있어 위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저주와 고난이 아닌 사랑과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중요한 대목은, 하나님의 뜻은 그러하나 실제 우리가 몸소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고 싶지만 상처를 받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지만 오히려 정죄를 받습니다. 축복을 받고 더 나은 삶을 원하지만 '십자가'라는 이름 아래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 때가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유다 왕국의 일생일대의 위기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아달랴 때문에 유다 혈통의 왕국의 자녀들은 모두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모두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이었던 아기 요아스 왕자는 왕의 딸에 의해 아달랴의 손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됩니다. 여호사브앗은 왕자 요아스와 그의 유모를 몰래 빼내 침실에 숨겨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요아스는 하나님의 전에 6년 동안 숨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요아스 왕자에게 일어난 일과 같은 무게의 역경이 저와 여려분에게 찾아왔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십자가의 이름으로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왜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라고 항의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과 축복의 삶을 원한다 하더라고, 우리 앞에 고난과 역경이 찾아옴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이 찾아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아스와 그의 유모가 하나님의 성전에 간 것처럼, 넘지 못할 산이 앞에 놓일 때, 우리의 발걸음은 교회를 향해야 합니다. 요아스가 하나님의 성전에게 바르게 잘 성장한 것처럼, 성도는 예배를 통해, 기도와 찬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오늘의 실천.
고난과 역경이 찾아 올 때, 우리의 발걸음이 교회를 향하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
기도하는 교회, 찬송하는 교회, 은혜 받는 교회 되게 하소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임을 믿게 하소서.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는 바른 믿음의 사람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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