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er [철학] 데카르트(1596-1650) 이석재 교수의 강의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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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인/신학과 철학

[철학] 데카르트(1596-1650) 이석재 교수의 강의 중에

by Bethel of jacob 2020.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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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근대철학 2강 이석재 교수  강의 중에....

감각과 이성 - 데카르트 

앎의 열쇠로서의 이성.

○이성이란? 
감각과 대비되는 사유하는 능력 혹은 작용.

○감각의 대상
눈, 귀, 코, 손등으로 확인되는 일상적인 대상

○이성의 대상
삼각형, 피타고라스의 정리, 나의 감정, 생각등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유의 대상.
사유를 통해 무엇을 아는 능력이 이성적 능력이다.
이성적 능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추상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추상은 감각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것.
감각적으로 확인이 되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말한다.

원의 정의를 생각해봐라. 
평면 위의 한 점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다. 
동전의 원은 원일까? 테두리의 점들이 등거리에 있는가? 아니다. 들쭉날쭉이다.
컴퍼스로 그려진 원은 원일까? 선은 두깨를 가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직선과 곡선을 구분하지만, 감각적으로 우리는 선은 본 적이 없다.
마음의 눈으로 이성으로 보는 것이 선이다. 
이성으로 보게 도와주는 장치가 바로 감각이다.
이런 능력을 강조한 것이 바로 데카르트이다.
감각이 갖고 있는 한계를 주목한 이유이다.

이성이라는 것은 우리의 정신의 어떤 능력인데, 특정한 감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는 마음의 눈이다.
마음의 눈은 수학적 대상을 살펴볼 수 있을뿐만 아니라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다. 

데카르트의 문제제기.

○제일철학(第一哲學)에 관한 성찰 <제1성찰> 
*1614년 출간.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주장들을 담음
6개의 성찰로 이루어져있다.

"몇 해 전에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참이라고 받아들였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거짓이고,
이 거짓들을 토대로 쌓아올린 구조 자체가 무척 의심스럽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학문에서 안정적이며 영속적인 것을 하나라도 얻기 위해서는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모든 것을 무너드리고 기초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AT VII 17)

기존의 과학과 접근방식을 강력하게 비판하려는 의도.

- 방법적 회의.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인식을 제거하고 확실한 인식만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인식에 의도적으로 제기하는 의심을 말한다. 

○때때로 우리를 속이는 감각.
-감각은 때때로 우리를 속인다.
-그러므로 감각을 믿어서는 안된다.
-좋은 논변인가?
-이상적인 관찰 상황에서도?
데카르트는 감각에 근거한 모든 것은 확실한 기초가 될 수 없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어떠한 믿음도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감각은 우리를 속인다는 것에 대해서 설득력이 있는가?
그렇다고 감각에서 주는 모든 것을 거부할 것인가? 
메트릭스 세계를 생각하면 된다.
내가 메트릭스 안에 있고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실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공간에서 외계인들이 사람들을 갖다놓고 기억력을 조작해서 실험하던 그 영화의 내용처럼, 감각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악령의 가설
- 2+2=4가 확실하기 위해서는, 전능학 악령이 나를 속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야 한다.
- 전능한 악령이 나를 속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
- 2+2=4가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회의의 심연! 

2+2=4라는 것이 감각에 의한 답이 아니지만, 악령에 의해서 2+2=5이지만 4라고 믿는 것은 아닌가? 
이 믿음을 제거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능성은 악령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꿈의 가설, 가상현실의 가설, 악령의 가설, 주체에 의한 현혹되는 가설을 통해서 데카르트는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확실치 않다. 거짓은 아니지만 그것이 확실하진 않다는 것을 기초로 한다.

○회의의 심연.
: 방법적 회의의 결과로 아무것도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없는 상태. 
: 끝이 없는 의심의 상태
-감각에 근거한 모든 판단
-수학적인 진리 
-참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 -> 의심스러운 상황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시도가 그런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으로....
-진정한 앎은 불가능한 것일까?
데카르트가 찾고자 하는 것은 객관적인 진리가 있느냐하는 것이다. 객관적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믿는 다는 것은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탈출의 열쇠 : 생각하는 나.
-회의의 심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회의의 심연에 빠진 나
-의심은 하고 있는가?
-의심을 하고, 회의를 하고, 두려워하고, 궁금해하고, 이것저것을 따져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생각을 하는 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한치의 의심도 없는 그러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회의의 심연.


“그러면 생각이 일어나는 한 그 생각은 일어나고 있고. 그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는 판단을 틀리지 않고. 생각이 일어나는 한 그 생각을 하는 주체가 있고.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주체가 나라면.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한 나는 어떻게 됩니까? 존재합니다.
생각한다.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주장이 그 주장입니다. ”
- 이석재 교수

나의 생각의 내용은 거짓일 수 있으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거짓일 수 없다.
"생각한다.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주장이 바로 이것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생각을 하는 한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런 생각을 안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착각인 것이다. 
생각은 곧 사유.
사유가 일어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틀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함
나의 본질은 사유하는 주체이다.


○사유(思惟)의 주체로서의 나.
- 사유가 일어나는 한, 사유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거짓을 수 없다.
-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존재한다.
- Cogito ergo sum.(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존재?
- 사유의 주체
- 육체를 가진 나는?

회의의 심연에서 벗어나는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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