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er [신학] 바울서신으로 보는 교회 / 문병구 교수(서울신대)
본문 바로가기
학문적인/신학과 철학

[신학] 바울서신으로 보는 교회 / 문병구 교수(서울신대)

by Bethel of jacob 2020. 6. 2.
728x90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공동체의 전체회복에 대해서 교회공동체에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새로운 피조물 ; 고후 5:17, 갈 6:15에 근거))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곧 교회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는 중요한 사도바울의 교훈이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정체성을 근원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방법.
사도바울의 기본적인 관심은 이미 옛 세상에 속한 것과 새로운 세상에 속한 것을 구분.
옛 질서와 새로운 질서를 구분한다. 

"교회는 어떻게해야하는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으로 새롭게 지음 받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새롭게 속한 백성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와 더불어 성령을 받고 전인격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나가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도 이렇게 회복된 세계관과 인간성을 지닌 자들이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역사를 창조에서 종말까지 얘기하면서, 두 세대를 얘기한다. 옛 질서와 새로운 질서.
옛 질서는 천지창조부터 예수 전까지. 여기까지는 옛 사람. 새로운 질서는 예수 이후부터이다.
옛 질서에서는 사탄들의 역사가 더 강력하게 역사하는 세상이다. 
이 안에 담겨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의롭게 살아가려는 의도가 있어도 잘 안된다. 
옛 질서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쌍한 사람이다.
로마서 7장에, 곤고한 자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바울의 개인의 고백을 통해서 옛 질서에 속한 사람들의 상황을 대표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사람들은 사단의 통제하에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어도 힘들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던 이스라엘도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살 수는 없던 것이 바로 사단의 역사가 강했기 때문이다. 
쉐마를 했어도 그렇게 살기 힘들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가로막는 사단의 역사가 더 강력했다.  
그러한 옛 사람들을 탄식하면서 슬퍼했던 것이 로마서 7장이다.
죄와 죄성을 갖고 태어나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를 마음으로 받으면 새로운 백성에 속하게 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옛사람처럼 사단의 역사가 강력하게 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질서이기에 옛사람과는 다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헤로 사단의 중점이 끊겼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다.
옛질서에 있는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질서에는 사단의 역사가 꺽이기도 했지만, 성령의 은혜를 받는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얘기하면서 새로운 질서에 속한 백성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죄이며 나쁜 죄이다.
교회공동체는 이러한 것과 다른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은혜로 살아가는 새로운 백성들이다.
이것이 교회공동체의 첫번째 정체성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누구냐?"
십자가의 은혜를 전적으로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성령은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새로운 사람, 그리스도인의 모임이 되는 것이다. 
구약의 공동체가 이런 모습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이고 묵상하고 율법을 읽을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다른데, 마음 속 깊이 십자가를 간직하고 성령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세계 곳곳에 어둠과 대조해서 빛을 비추는 확신을 가지고 모여있는 교회를 칭한다.
이들이 이 땅에 살면서 불완전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린도 교회를 향해 거룩한 자들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을 지적하지만, 거룩한 자들로 불렀다.
거룩한 삶을 향하여 경주하는 자라는 것. 그것이 새로 지음 받은 공동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이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얘기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은,
주변 세상이 너무 타락했기에 우리는 그들과 선을 긋고 따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 세상과 담을 쌓는 것이 아닌, 교회는 끊임없이 주변 세계와의 근본적인, 절대적인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유지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옛 질서에 속하지 않는,  이 세상에 악한 것들, 그러한 것들과도 분명한 차이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 오늘 우리의 교회 모습이 이러한 모습. 이러한 교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번째 모습은, 성령의 충만으로 능력을 찾는 교회 공동체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교회를 성령이 충만한 곳으로 이해한다.
교회에 관한 핵심적인 신학적인 사상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는다. 개인이 성령을 받았듯이 공동체도 성령을 받는 집단으로 이해함.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느니.'
그래서 바울은 교회가 성령의 은사들로 충만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성령의 열매, 은사가 없는 것은 사도바울이 가졌던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성령의 은혜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은사와 열매, 
성령의 역사에 대한 사모함이 있다면, 사도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풍성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러한 은사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성령의 열매들이 교회에 나타나야 하는데 성령의 최고의 은사이자 열매는 '사랑'이다.
고린도전서13장에서 바울이 교회에 대한 비전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마서 12,13장에 나오는 바울의 권면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사랑 뿐만 아니라, 사랑의 실천적인 것을 제시한다.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사람을 일으키는 것.
베드로와 요한이 오순절의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시야가 달라졌다. 
그렇기에 앉은뱅이를 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다.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혼에 대한 궁휼함. 곧 사랑이 생긴 것이다. 
사랑은 열매이면서도 은혜이기도 한다.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고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지,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를 통해서 영적 은사를 구분하는 쉬운 점이 바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는데, 성령을 받은 자의 특징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곧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는 교회인가를 물어볼 수 있다.
사람을 외적인 조건으로 구분하지 않고 영혼을 깊숙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받은 공동체이다.
그리스도 교회가 갖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성령의 은사, 열매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내 삶 속에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인간이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차별하지 않는 똑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넘처나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령의 열매와 은사를 사모해야 하며, 성령의 열매와 은사를 나눠야 한다. 

세번째, 교회 공동체의 섬기는 공동체로 생명력을 회복하는 관점에서 바라본 교회공동체.
교회는 섬기는 곳이다. 
데살로니가 5장 17절 '덕을 세운다.' 
교회는 섬기는 공동체이다. 
남을 비판하는 곳이 아니다. 비판의 영향력을 받는 곳이 교회공동체이다.
섬기는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고 교회공동체를 섬겨야 세상을 섬길 수 있다.
교회는 세상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도 교회를 향해서 싸인을 보낸다.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를 섬기지 못하는 문제점. 가진 자와 없는 자 등… 지역차별…. 
눈에 보이지 않는 분열. 등….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서로를 존중해주는 것.
고린도전서11장 17절 이하에 고린도 교회에서도 계층간의 분열이 있었다.
성만찬과 공동식사에 대해서 말함. 그리스도의 희생적 십자가의 죽음을 거론하면서 성도들을 교훈함.
교회는 기본적으로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한 은혜로 말미암아 함께 모여있는 곳이기에 서로 섬기고 내어주는 것이 교회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어떠한가?
1. 성령의 은혜와 은사가 넘처나서 교회 안에 사랑이 가득한지 점검해봐야 한다.
2.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새로운 질서에 속한 백성이다라는 것.
3. 새로운 질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 

내 행위로 말미암는 율법의 강요성이나 구속함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새로운 질서에 속한 자유함. 당당함.
율법백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능력을 소유하고 비전을 갖고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있는지??

공동체성의 회복, 주님의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 
소유를 채워주는 공동체. 
바울의 공동체적인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서로 뒷받침해주며 섬겨주는 것을 제시한다. 실제적으로 구체적인 비전을 특정한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교훈한다.
자신이 세웠던 교회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깨끗하며 성령의 열매가 넘치며 사랑의 열매가 넘쳐나는, 우리 교회의 정체성, 모습, 새로운 비전과 도전에 대해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