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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인/신학과 철학

[신학] 본회퍼의 사회정의

by Bethel of jacob 202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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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한 기도와 행동, 본회퍼의 영성 문제"

45년 이후에 에큐메니칼 운동(ex WCC)에 영향을 준 신학이 본회퍼 신학. 타자를 위한 교회, 타자를 위한 신학.

○ 사신 신학
- 본회퍼의 성인 된 세계라는 표현이 있는데 하나님은 죽고 그리스도로 성육신 했다. 새로운 성육신만을 강조하는 신학이 사신 신학 하지만 삼위일체론의 부족.

세속 신학
- 사회참여 신학이다. 대표적으로 반 뷰렌, 하비 콕스(세속 도시) 
세속화와 세속주의는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세속주의는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 
세속화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자유를 갖고 세상을 책임 있게 다스리는 것이다. 
이 세상 속에서 본회퍼가 강조한 것은 이 세상성에 대한 강조이다. 

상황 윤리
- 상황에 따라서 원칙이 없이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갖고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라는 책에서 폴 틸리히, 볼트만, 본회퍼를 갖고 남을 위한 인간이라는 챕터에서 예수는 사랑의 행위 이것을 강조해서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 주어진 상황에서 적합화되는 것. 

성도의 교제 - 신카이레인(Synchairein) 사회적 기본개념.
헤겔의 사상이 본회퍼에게 녹아있다. 헤겔의 객관적 정신과 절대적 정신 -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
본회퍼는 성서적으로 주석을 했지만, 역사비평적 방법을 사용하면서 독창적인 해석을 했다.
제베르크는 신학 주제들을 인식론 영역에 맡기지 않고 의지론적 요소들을 강조.(144)
믿음을 의지라는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본회퍼는 인식론적이 아닌 의지론적으로 받아들였기에 본회퍼는 실천적인 측면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제베르크는 본회퍼에게 사회의 기본 개념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145)
제베르크는 역사성은 물론이고 사회성도 인간의 본질적 특징으로 여겼다. 본회퍼는 사회성을 모든 신학 개념들의 본절직 표질 여겼다.(145) 제베르크는 종교의 선험적 인식을 중시했다(칸트적) 하지만 본회퍼(바르트의 영향을 받음)는 성도의 교제에서 칸트를 부정.

종교의 선험적 인식 - 창조된 정신 내지 자아의 순수 형식적 천부적 재능.
본회퍼는 종교의 선험적 인식이 종교개혁을 모호하게 한다고 여김(19세기의 사상)
인간의 종교적 능력을 참조하도록 지시하여 자기 탐구로 이끄는 모든 것에 격렬히 저항.

본회퍼는 바르트가 제시한 순서대로 계시에서 출발하여 교회로 나아가면 구원론의 요소가 부차적인 것.
구원론의 터전을 도외시한 채 계시만 사고하려 하지 않았다.
(157) 영적 주석의 시도는 기도행위이자, 성령을 청하는 행위다.

 

본회퍼의 저작.


SE - 성도의 교제 (박사논문)  ;사회학과 신학의 문제.
성도의 교제를 하는 곳이 교회. 이 책은 교회론이다.
사회학적인 것을 갖고 기독교를 정리한 사람이 트륄치(Ernst Troeltsch)이다.

막스 베버.”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
왜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는가? :로마 교황청 베드로 대성전을 보고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됨.
교회론을 쓰되 사회학적인 접근으로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며 사회학적인 것은 공동체적인 것을 말한다.
인격도 집단 인격. 본회퍼
신학의 전체 신학을 보려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핵심이다.
교회론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보아야 한다.
처음 질문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이다.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 핵심적인 단어이다.  

AS - 행위와 존재 (교수자격 논문); 철학과 신학의 문제.
1927년에 하이데거의  'sein und zein' 교회가 일치해야 하는데 신학과 철학의 문제 중에서 행위와 존재 사이의 문제.
act의 문제는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1919년 칼 바르트의 ‘로마서' 1933년 히틀러 등장. 1919년과 1933년 사이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한다. 
키에르 케고르의 변증법에서 따온 것이다. act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행위가 중요하다고 봄.
칼 바르트는 하나님으로부터 생각. 하나님 중심, 
불트만은 인간으로부터 생각. 인간 중심.
하나님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행위는 신학의 문제이고 존재의 문제는 철학의 문제이다.

SF -  창조와 타락 (강의원고)
창세기 1 - 3장까지의 신학적 주석. 관계는 칼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의 핵심어. 
본회퍼의 ‘관계 유비’ : 하나님과 인간이 어떠한 점에서 유사성이 있는가? 
왜 관계가 중요한가에 대한 것.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담과 하와의 예시이다.
하나님처럼, 하나님같이 되려는 죄. 창조물과 피조물의 관계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인데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부정한 것.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존재의 유비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 칼 바르트.
부르너의 '자연과 은총’ 인간은 타락했지만 형식적으로 남아있다.
칼 바르트는 ‘아니요’라는 책으로 반박. 본회퍼는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계시 실종 주의라고 함. 
칼 바르트의 ‘인간학'

CV - 그리스도론 (강의원고)

N - 나를 따르라(Nachfolge:추종, 뒤따름)
목사가 된다는 것에 부족한 점이 기도, 성경이다. 
성경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산상설교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강의론.
앞에는 제자란 무엇인가? 그 제자에 대한 핵심 포인트가 십자가. 제자의 길은 곧 십자가의 길이다.
본회퍼에게 제자의 길과 십자가의 길.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의 부름. 제자의 순종, 나를 따르라의 핵심이 ‘부름, 순종, 십자가(고난)’이다.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믿는다. 
제자의 길은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때문에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기쁨(여기서 기쁨의 신학이 나온다.).
제대로 믿는가에 대한 검증은 십자가이다. 타자를 위한 존재, 타자를 위한 교회일 때 교회다운 교회가 된다. 

마태복음 5-7장까지의 해석을 하는 것이 2부.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

GL - 신도의 공동생활 
1934년에 ‘바르멘 신학 선언’ ; 히틀러에 반대하는 교회적 선언.
바르멘 선언문의 기초는 칼 바르트가 함. (칼 바르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 장로교, 루터교, 연합교회가 독일의 대표적 교회. 바르멘 선언에는 유태인 문제가 없다고 본회퍼가 지적. 
인도를 가려고 했으나 학생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쓴 책.

E - 윤리학

WE - 저항과 복종
영성의 시초 :  사도 바울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육체를 배제한 것이 아니다. 육은 살이 아닌 Body를 뜻하는 것이다. 육을 배제한 것이 아닌 영은 성령의 능력에 따라 사는 사람.
기독교는 Platon의 철학을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희랍어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
본회퍼의 신학 중에 영과 육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한데 플라톤의 사상을 배제하고 봐야 이해가 쉽다.
영혼 불멸성은 희랍적인 사상이다. ‘영혼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 - 오스카 쿨만.

희랍적인 사상이 들어가면서 가톨릭에서는,
1. 희랍적으로 영과 육을 분리.
2. 은둔 주의
3. 영성 주의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영성을 싫어해서 ‘경건'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
웨슬리는 ‘완전' 가톨릭에서 영성을 많이 얘기하면서 1970년대에 미국에서 영성, 80년대에 우리나라 장로교에서는 ‘영성'이라는 말을 안 쓰고 ‘경건'이라는 말을 쓴다.) 

본회퍼에게 영성.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시작한다. 
영과 육이 결합,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함께 있는 것이 영성이다.

 

"나를 따르라" 본회퍼가 살아있을 때는’ 나를 따르라’가 가장 유명함.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 종교개혁 때부터 잊혀진 주제가 나폴겐(나를 따르라)
제자의 길을 부각시킨 사람이 본회퍼.

제자의 길 - 십자가(여기서 십자가 신학이 나옴).
하나님을 인식하는 문제에 있어서 두 가지 신학이 나온다. 
"Theologia crucis.” 십자가 신학 -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
“Theoogia Gloriae” 영광의 신학. - 고난 없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

루터교에서는 질서의 문제를 다룸.
본회퍼는 십자가 신학을 이해해야 제자직을 이해할 수 있다.
십자가는 죄의 해방으로부터 다룸.

바울 - 십자가의 길이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의인론(칭의론)
바울도 죄로부터의 해방인 해방신학이다.

루터 - 1518년 십자가 신학을 갖고 교회와 당시의 신학(중세적인 신학)으로부터의 해방을 시킴.
루터의 문제 인식은 하나님 인식 문제로부터 출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인식하지 않으면 가짜라고까지 말함. 

본회퍼 - 제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교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다룬 것이 나를 따르라이다.
영광의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알아야 한다. 

플라톤 - 이데아론 : 우리가 볼 수 있는 현상계의 모든 것은 원형이 있다. 이분법의 원조. 

아리스토텔레스 - 이데아가 아닌 완전 분리가 아닌 질료와 형상
도토리 참나무 예시.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참나무가 고정이 아닌 가능태와 현실태를 통해 변화된다.
(도토리 -> 참나무 -> 도토리) 
최초의 원인 - 제1 원인.(형상) - 중세의 우주론적 증명.
부동의 동인. 최초에 해당하는 것이 세상을 만든 신.
이러한 인식. 역추론해서 올라가면 신을 인식할 수 있다.

루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을 깨고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인식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영광의 신학은 고난 없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루터를 이어 옴. 루터는 신학과 교회로부터의 해방만을 함. 중세 교회, 중세 신학으로부터의 해방만 함.
본회퍼는 기독교의 제자로서 교회로서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통해 사회까지 나아감.
몰트만까지 오게 되면 복음의 정치적 해석으로까지 온다.

은혜 - 기독교안에서만 쓰는 단어. 은혜는 자기의 전 존재를 걸어야 한다.
죄의 고백을 하면서 얻어지는 것.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은혜에 대한 응답이다.

신도의 공동생활 - 실천.

‘나를 따르라.' 부름과 따름에는 은혜가 있다. 부름에 단순하게 순종하는 것이 은혜이다.
불순종하는 사람과 순종하는 사람 사이에는 은혜라는 것이 연결된다.
은혜로운 부름. 52-80page.
제자직이 없는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그리스도교로 남는다. 믿음의 표현이 따름이고 순종이다.

예수의 인격에 매이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의 말씀과 순종 사이에 극단적인 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단순한 문자적 순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들의 십자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들어야 한다.

나를 따른다는 것의 개념 4가지 변화
바울에게는 뒤따름의 표현보다는 닮음이라는 것으로 초대교회 순교 시대에는 뒤따름은 순교였다.

희망의 미래와 미래의 희망.

“보복" 다섯 번째 반대 명제. 구약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그대로 갚으라는 것이다.
이 구절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간디는 이 말씀에 따라서 저항을 하되 비폭력. 즉 비폭력 저항. 
이 정신을 미국으로 갖고 간 사람이 마틴 루터 킹. 이 정신의 뒷받침에는 소로가 있다. 

이상적인 것인가 혹은 현실적인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보복을 하지 말라. 고난과 십자가와 연결(해석에 있어서) 보복하지 않는 것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간디는 일차적으로 톨스토이에게 영향. 
톨스토이는 소로의 『시민 불복종』의 글을 읽음. 톨스토이와 간디와 서신교환을 통해 소로를 읽음.

핵무기는 결국 상대방과 나를 죽음으로 모는 것이기에 원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본회퍼의 윤리는 책임윤리이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책임윤리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삶의 윤리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면서 책임윤리를 말함.

1. 대리행위
본회퍼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대리적 삶의 모델로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대리적 삶이다. 

2. 현실에 대한 적응성.
상황 윤리적 성격을 얘기할 수 있겠으나 다른 개념으로 제한성. 인간으로서의 제한성을 명확히 둔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한성은 하나님을 만나고 이웃에 대한 책임.

3. 죄책을 받아들이는 것.
실제로 본회퍼는 자기 스스로가 죄없음이라 하는 것으로 정결케 되었음이라는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죄에 대한 책임적 행동으로 들어갈 때에 죄에 대한 책임으로 있게 된다.

4. 자유
자유는 책임 존재론적으로 본다. 책임과 자유는 동전의 앞, 뒤면으로 함께 가는 것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용감하게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이다.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에 반론으로서의 책임윤리. 본회퍼는 왜 속박과 자유로 풀어서 이야기했는가?
하나님에게 속박되어있다. 인간은 속박을 당하는 제한적 존재이다. 속박과 자유를 풀어내야 책임이 가능하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있다. 

책임적 삶의 구조는 두 가지이다. 속박과 자유. 
속박은? - 하나님과 인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유는? - 자기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
책임의 장소에서 장소는 소명이다. 

영성,
바울부터 시작. 
육에 속한 영에 속한 이러한 것의 영은 육을 배제한 것이 아니다.
희랍의 영향으로 인해 육적인 것을 배제하는 느낌으로 바뀜.
중세에는 라틴어로 번역이 되는 과정에서 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게 됨.
수도원 주의로까지 나감. 종교개혁자들은 그래서 영성을 꺼려하는 입장이다.
영성 대신에 헌신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영성이라는 말은 기독교 역사에서 잊혀진 것이다.
열광주의, 광신주의, 도피주의(수도원 주의)로 인해 개신교에서 기피.
1930년에 가톨릭에서 영성을 쓰면서 부흥.
1970년에 개신교에서 사용.
총신에서는 '영성' 대신에 '경건'으로 사용함. 미국 영성훈련의 대부분은 본회퍼의 'Life together'에서 나옴.

윤리를 중점으로 전기, 후기로 나뉜다. 통일신학은 평화신학에 근거해야 한다. 
통일은 평화를 실천하는 과정.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 평화실천이다. 마 5:9
통일신학은 평화신학에 근거해야 한다.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하는 평화통일이 되어야 하고 통일은 평화를 실천하는 한 과정이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한민족의 염원이요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평화통일은 우리가 이루어내야 할 역사와 시대적 사명이다. 

윤리학은 부엉이가 마지막에 정리를 하면서 사는 것이다. (행위를, 문제를 다루는 것이 윤리이다.)  그래서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며 볼 수 있어야 한다. 

동양평화론이 주는 오늘날의 의미.
칸트와 안중근의 평화.
1989년 몰타 회담.(12월) 얄타체제에서 몰타.(소련과 미국의 회담). 신국제질서, 탈냉전.
통일의 3가지 요소 : 필요성, 당위성, 긴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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