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er [신학] 한국교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 김두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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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인/신학과 철학

[신학] 한국교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 김두식목사

by Bethel of jacob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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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 교회 전도의 현주소

우리는 대부분 이론에는 강한데, 실천에는 약하다. 신학교에서도 성경 원어나 신구약 및 조직신학은 중요 과목으로 분류되고 강조되는데, 정작 목회 현장에서 더 필요한 실천신학은 푸대접을 받는 선택 과목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도의 정의(What)와 당위성(Why)을 신학적으로성경적으로는 잘 알면서도, 실제로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How) 전도해야 할지는 막막한 것이대다수 교회와 목회자들의 현실이다.

전도는 우리가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어명이다(딤후 4:1-5).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분의 재림과 그 나라를 걸고 4중 강조까지 하시면서 엄하게 내리신 최고의 명령이다. 또한 전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다(마 28:19-20, 행 1:8, 막 16:15). 땅 끝까지 이르도록 순종하고 실천해야 할 가장 긴급하고 절박한 명령이다.

하지만 세상이 포스트모던 시대로 접어들면서 복음 전도는 그 어느 때보다 통하지 않고 있다. 
교회는 전도의 사명에 충성하지 못 하고, 성도들은 전도를 무거운 짐으로 여기며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 
불신자들은 교회가 기존의 전통적 방법으로 전도할 때, 호감은커녕 반감을 가지고 대한다. 
그 어느 때보다 반기독교 세력이 연대해 교회를 대적하며 성도를 핍박하고 있고, 이단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개척교회는 개점휴업 상태고, 기성교회는 열매 없는 형식적인 전도에 지쳐 있다. 총체적인 전도의 위기가 온 것이다. 
더군다나 기존의 전도는 뚜렷한 특징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거리로 나가서 전도지와 함께 전도 물품(볼펜, 휴지 등)을 나눠주는 것이 보통이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힘주어 외치지도 못 하고, “휴지 받아가세요”라거나 “이거 한 번 읽어 보세요” 정도로 전도를 끝낸다.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지도 못 하고, 전도지만 나눠주고 오는 것이 전도가 돼버렸다. 길거리에서 식당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생들과 다를 바가 없다. 길거리에 버려져 나뒹구는 전도지를 보는 것만큼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불신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공공장소에서 목청 높여 고함을 지르며 외치는 전도다. 확성기까지 동원해 소음을 만들어낸다. 이에 대한 불신자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보다 심각하다.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최근의 한 설문 조사는 우리를 당황케 한다. 전도의 이미지가 최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공사가 지난 6월 지하철 5-8호선 승객 1,9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만족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하철 안에서 가장 없어져야 할 모습 1위는 ‘전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3%가 ‘종교 전도’, 27%가 ‘취객’을 ‘가장 불편한 무질서 행위’로 들었다. ‘전도’가 ‘취객 행태’보다 더 혐오스러운 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가장 고상한 행위인 전도가 가장 혐오스러운 술주정과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됐다. 우리는 열심히 한다고 한 전도가 불신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요인이 된 것이다.

길거리에서 혹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이나 학교 앞에서 전도하는 것이 나쁘다거나, 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거리를 다니며 그들을 강권해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는 자들을 칭찬하고 그 믿음과 용기와 순종에 감사해야 한다. 무명의 거리전도자들에게 칭찬과 감사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불신자들이 아무리 전도자를 미워하고 욕하고 핍박해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노방 전도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죄인들을 향한 복음 전도는 어느 시대나 마귀의 집중 공격을 받아왔고, 안티들의 거센 도전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도를 안 하거나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전도의 방법을 취해도, 반기독교 세력들은 그것을 비난하고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방법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라는 내용 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전도해도 그들은 비난과 핍박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전도방법이 불신자들의 비난과 공격을 자초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방법 때문에 내용이 전달되지 못 한다면, 방법을 바꿔 보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전도의 이런 현실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효과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쓰였다. 전도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 틀, 기준)을 모색해 보려는 것이다. 전도의 내용이나 강도(强度)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불신자에게 반감은 줄이고 호감은 늘리는 방법으로 전환해보자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전도 방법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들이 전통적인 복음 전도에 대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폭발적 관심을 보이지 않기때문이다. 전도지만 나눠줘도 눈물을 흘리며 영접하던 때가 있었다. 사영리를 통해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전도했고, 그림 없는 책으로 초등학생들을 교회로 인도했으며, 여름성경학교 때는 북과 장구만 쳐도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교회로 몰려왔고, 부흥회 때는 전단지만 돌려도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예전의 전도 방법에 대해 별 반응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관심을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상 종교다원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는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전도는 ‘편협한 기독교’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게 된다. 그들의 인식 속에 ‘전도자=광신도’라는 공식이 성립되고야 만다.

셋째, 기독교 진리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반감의 확산과 이단의 창궐 때문이다. 안티기독교 세력들이 반기독교 연합체를 구성하고, 교회와 복음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핍박한다. 더 이상 전통적인 전도 방법으로는 대중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이단들도 교회와 똑같은 방법으로 전도하기에 교회와 이단의 구별이 모호하다.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교회는 이단과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전도 방법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전도 전문가인 탐 레이너(Thom S. Rainer)는 그의 책 The Unchurched Next Door(Zondervan, 2008)에서 각 불신자 그룹의 특징과 비율을 담은 ‘레이너 척도’를 발표했다. 불신자를 U5에서 U1의 5단계로 나누고, 그들의 복음에 대한 반응과 비율을 연구한 것이다. U는 불신자, 즉 ‘Unchurched person’을 의미하는 약자다.

먼저 U5는 복음에 적대적인 그룹으로 5% 정도의 비율로 나타났다. U4는 복음을 거부하는 그룹으로 21%, U3는 복음에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그룹으로 36%, U2는 복음에 우호적인 그룹으로 27%, 마지막으로 U1은 복음에 매우 열려 있는 그룹으로 11%였다. 미국과 한국의 사회문화적 차이는 있겠으나, 김두식 목사는 9년 동안 미국에 살며 공부하고 목회해 본 결과, 한국과 대동소이하다고 여겨진다. 탐 레이너 역시 불신자들의 태도는 거주지나 인종, 성별과는 전혀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복음에 적대적인 그룹인 U5는 우리가 전도하러 나가서 만나는 100명 중 5명에 불과하다. 적대적이진 않으나 복음에 거부감을 보이는 자는 21%다. U5와 U4를 합친 26%가 문제인 것이다. 그들이 복음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복음을 영접하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 또한 중립적 태도를 보이는 36%의 U3와 복음에 우호적이거나 열려 있는 38%의 U2와 U1은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전도의 내용은 불변해도 방법은 시대와 지역과 대상에 따라 전략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전도의 방법 때문에 전도의 내용마저 비난을 받지 않도록 전도의 방법을 새롭게 바꾸는 시도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전도는 거리로 나가 전도지를 나눠주는 것이 거의 전부다. 휴지나 볼펜 등의 전도 물품과 함께 전도지 한 장 나눠주며 예수님 믿으라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조금 열정적인 전도자는 버스나 지하철, 시장, 아파트로 가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전도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기독교 세력들이 가장 혐오하는 방법이다. 그들이 싫어한다고 우리가 전도를 안 하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지만, 불신자들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다가가서 반감보다는 호감을 사며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시도해 보는 편이 좀 더 낫지 않을까? 무작정 외치거나 찾아가서 기다리고 전도지를 나눠주며 따라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찾아오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불신자들의 반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반감을 최소화하며 좀 더 호감을 주면서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전도의 새로운 패러다임 ‘섬김을 통한 초청’ 놀랍게도 그 비결은 예수님과 바울과 초대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대에 적합한 전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섬김을 통한 초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관계를 형성’하고 ‘스토리’를 만들며 전도해야 생명의 열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도 방법은 크게 ‘착한 행실로 감동을 끼치며 지역사회를 섬기는 전도’,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며 지역사회를 섬기는 전도’, ‘초청을 통한 전도’로 나눠볼 수 있다.

1. 착한 행실로 감동을 끼치며 지역사회를 섬기는 전도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시작하시며 마태복음 5:16에서 전도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주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로 감동을 끼치며 전도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지침이었다. 단순히 거리로 가서 핍박을 감수하고 외치는 수준이 아니라, 착한 행실을 통해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영광을 돌리도록 우리의 삶을 통해 전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전도지 한 장 나눠주며 예수님 믿으라고 외치는 정도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착한 행실로 감동을 끼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라는 명령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먹이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말로만 하는 전도가 아니라, 착한 행실로 감동을 끼치며 지역사회를 섬길 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섬김이 진정한 전도다. 구체적으로 눈과 비가 올 때 버스 승강장이나 지하철역 입구에서 우산을 빌려주는 전도, 자취생들을 위해 매주 한 번 반찬을 나눠주는 전도, 노숙자들을 위해 주중 무료급식을 하는 전도, 지역 빈민을 위한 사랑의 쌀독을 통한 쌀 나누기 전도, 택시기사들을 위한 차와 생수 나누기 전도, 등하교길 안전 도우미 전도, 학교 앞 교통정리 전도, 밤거리 순찰 및 방범 전도 등을 통해 교회가 착한 곳임을 각인시키고 이웃을 감동시키는 섬김 사역이 필요하다. 이것은 전도를 위한 교회의 단순한 전략이나 의도된 작전이 아니라, 교회가 살아내야 할 순수한 삶 그 자체다. 그렇게 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전도의 문도 활짝 열리게 된다.

교회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을 섬기는 동시에 세상을 섬기는 전도지향적 활동이 돼야 한다. 세상에서도 착한 가게와 착한 기업이 감동을 끼침으로 성공하듯이, 교회는 착한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세상에 감동을 줄 수 있으며 부흥할 수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열매가 안 보여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 열매는 수고와 인내의 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상기한 전도 방법들은 복음에 적대적이거나 닫혀 있는 26%의 U5와 4를 감동시켜 그들을 좀 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오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복음에 중립적이거나 열려 있지만 아직 교회 밖에 머무는 U3, U2, U1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상기한 방법들 가운데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택시 기사를 위한 차와 생수 나누기 전도다. ‘한 달에 한 번 전교인 택시 타고 교회 오기’ 캠페인을 하고 택시 기사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며 방향제나 생수를 선물하는 단순한 전도지만, 이를 통해 교회는 두 가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택시 기사들이 그 교회의 위치를 다 알게 된다는 것, 둘째는 택시 기사들이 사람들에게 그 교회를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등하교길 안전 도우미 전도다. 등하교길에 각종 범죄나 사고로 불안한 학부모들을 위해교회가 안심 서비스를 개설하는 것이다. 등하교길의 어린 자녀들을 학교나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도우미 서비스다. 이를 통해 교회는 지역 주민들에게 ‘착한 교회’, ‘고마운 교회’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며, 등하교길에 집으로 혹은 학원으로 데려다주면서 그들과 부모를 전도할 수도 있다. 섬김이 곧 전도인 것이다.

셋째, 밤거리 순찰 및 방범 전도다. 각종 강력범죄,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만연하는 이때 교회가 나서서 밤길을 순찰하고 방범 활동을 한다면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치안 유지와 복음 전파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2.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며 지역사회를 섬기는 전도

고린도전서 10:33에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쓰여 있다. 유익을 끼쳐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전도왕 바울의 특징이었다. 전도왕 바울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to win as many as possible)’ 그리고 ‘여러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낮아지고 깨어져 섬기며 다양한 방법으로 전도했다. 고린도전서 9:19-23이 이를 증거한다. 오늘날 지역 교회가 고민하며 실천해야 할 부분이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해 그들이 구원을 받도록 지역교회는 섬김이 전도라는 사실을 유념하고, 섬기는 기회를 많이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섬길수록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린다.

 구체적으로 저렴하거나 무료로 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쉼터(카페), 어린이 전문 영어 도서관, 주부를 위한 어머니 도서관,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관,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취업 및 어학전문 도서관, 청소년 공부방, 노인대학, 각종 상담 센터, 문화센터(악기, 어학, IT반, 취미반등),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 태교 및 육아 학교, 어머니 기도회, 스포츠 전도(축구 팀, 배드민턴 팀 등), 의료 서비스, 지역 음악회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며 지역 사회를 섬기는 전도가 일어나야 한다. 무작정 사람들을 찾아서 거리로 나가거나 방문하는 전도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로 사람들이 직접 찾아오도록 전략을 짜고 교회 구성원들 가운데 전문가들을 전도에 헌신하도록 훈련하고 섬기게 만들어야 한다.

상기한 방법들 가운데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공부방 전도다. 
이것은 청소년 전도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교회에서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청년들이나 성도들 중에 적합한 자들을 자원봉사자로 섬기게 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부모님들을 초청하며 전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한다. 청소년들을 탈선과 비리의 현장인 거리로 내몰거나 방치하지 않고 교회에서 학습을 도우며 인성을 교육하는 일은 억만금이 들더라도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일이다.

둘째, 어머니 도서관이다. 
어머니 도서관은 이 땅의 어머니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자 재충전을위한 공간이다. 각종 정보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어머니들의 안식처다. 어머니들의 관심사가 되는 책들(요리, 자녀 교육, 건강, 자기 계발, 재테크 등)과 컴퓨터 등을 비치하고 기독교 입문서나 간증서들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한다. 북카페 형태로 작은 규모로도 얼마든지시작할 수 있다. 차 한 잔 마시며, 보고 싶은 책을 읽으며,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공간에 큰 만족을 느낀 어머니들의 입소문을 타고 교회로 많은 주부들이 찾아올 수 있다. 이때 교회는 그 다음 단계인 ‘어머니 학교’나 ‘어머니 기도회’ 등으로 그들을 인도한다. 간단한 다과와 함께 얼굴 마사지 팩을 준비해 놓으면 어머니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어머니 기도회다. 
어머니 기도회는 이미 전도의 탁월한 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가정을 위해 어머니는 기도할 것이 많다. 불신자들도 종교심이 많다(행 17:22). 어머니들을 초청해서 남편과 자녀와 조국을 위해 기도하게 하며 복음을 전하면 효과 만점이다. 각 분야의 상담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가정 상담, 자녀 교육 상담, 건강 상담 등을 해주면 더욱 효과적이다. 

넷째, 스포츠 전도다. 
운동을 통한 스포츠 전도는 특히 효과가 좋다. 축구 팀이나 배드민턴 팀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정기적으로 경기를 하면서 불신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교회로초청해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것이다. 축구 팀 구성이 어렵다면, 4-5명이면 되는 족구 팀을 구성하면 된다.

다섯째, 의료 서비스 전도다. 
한의사, 치과의사, 가정의학 의사 등을 초청해서 정기적으로 무료 상담과 진료를 해주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할 수 없다면, 한국 누가회 등의 무료 진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된다. 요즘은 ‘터치 전도’의 전성시대다. 발마사지 전도나,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전도, 스포츠 마사지 전도, 수지침·벌침 전도 등이 대표적이다.

3. 초청을 통한 전도, 탐 레이너에 따르면, 82%의 불신자들이 진지한 초청에 의해 교회로 온다. 사람들을 찾아 거리로 나서는 전도보다 그들을 교회로 오게 만드는 전도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초청을 통한 전도 방법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음악회를 통한 초청 전도다. 
음악회는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도 전략 중 하나다. 저명한 음악가를 초청할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교인들 중에서 전공자를 세워 지역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여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주민들을 초청해 음악과 복음을 동시에 들려주며 교회를 소개하는 것은 전도와 홍보의 2중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교회의 절기와 행사를 통한 초청 전도다. 
교회는 끊임없이 지역 주민들이나 전도 대상자들을 교회로 오게 만드는 초청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도, 안드레도, 빌립도, 우물가의 여인도, 무디도, 빌리 그래함도 모두 초청해 전도하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찾아가는 전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초청하는 전도는 그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특히 더 중요하다. 교회의 절기와 행사를 이용하면, 초청해 전도하는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추수감사절에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초청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찬송을 들려주고, 간증을 통해 복음을 들려주고, 떡과 함께 복음을 나누는 것이다. 세례식과 장례식도 전도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교회의 각종 절기나 행사에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초청하기 위한 전략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결혼 이주민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한글과 요리 교실을 통한 전도, 새터민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전도, 외국인 유학생들을 초청해서 식사와 관광으로 섬기며 전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였고, 그 결과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지는 교회였다(행 2:47). 지역사회의 필요를 채우며 지역의 필요를 따라 많은 이들의 유익을 구하며전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부흥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들은 나가서 섬김으로 전도했고, 사람들을 기꺼이 교회로 초청했다.

우리가 초대교회를 본받아 전도하지 않는 사이에 이단들이 섬김과 초청을 이용해서 포교하기 시작했다. 이단들은 특히 문화를 이용해서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고, 봉사활동을 가장한 동아리를 만들며, 스포츠를 활용해 포교하고 있다. 우리가 이단들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보다 더욱 열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복음을 전해서 다음 세대를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서는 전도를 꿈꾸며 김두식 목사는 13년째 매주 전국에 있는 교회들을 두루 다니며 전도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교회가 극단적인 두 부류로 나눠진다는 점이다.  ‘부흥하는 교회’와 ‘부흥하지 못하는 교회’, 그리고 ‘전도하는 교회’와 ‘전도하지 못하는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부흥하는 교회는 부흥하는 이유가 있고, 그렇지 못한 교회 또한 그 이유가 분명히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교회의 최고 리더에게 있다. 목회자가 전도에 전혀 관심이 없고 무대책인 경우가 너무 많다. 교회에 전도훈련 프로그램이 없으며, 전도 팀이 구성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전도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오직 설교에 목숨 건다고만 말할 뿐, 그 설교를들을 사람을 전도하지는 않는 모순을 보인다. 성도들에게는 전도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전도하지 않는다.

전도가 그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라면, 왜 성도들에게만 전도를 맡기고 목회자는 다른 일에 바쁜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라는 크나큰 모순에 빠져 있다. 교회의 부흥은 목회자가 전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얼마나 다양한 전도를 시행하는가에 달려 있다. 목회자가 전도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부흥된다. 부흥의 역사는 성령님께서 하시지만, 목회자가 가만히 있는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는 않는다.

골로새서 1:29 말씀처럼 목회자가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고백하며 최선을 다해 전도할 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 비록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다양하게 자기 교회의 재정 예산과 수준과 지역에 맞는 전도 방법을 개발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름 모를 거리의 전도자들에게 기독교복음의 전파를 홀로 맡겨두지 않고, 각 교회가 가장 합당하고 효과적인 전도 방법을 개발하고 시행할 때 교회는 복음 전파의 본분을 다하게 될 것이다.

지역교회는 더 이상 거리로 나가는 전통적 방법 하나에만 만족하지 말라. 그것만이 전도의 최선이라 고집하지도 말라. 거리로 나가는 전통적 전도와 함께, 이제는 대중을 교회로 찾아오게 만드는 창의적 방법들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고안해야 한다. 길거리로 달려가 담대히 외치는 전도자들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절대다수의 성도들도 전도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전도는 소수의 은혜 받은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의 공통된 사명이다. 전도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불신자들의 귀와 마음을 닫는 전통적인 전도 방법만 고집하거나 거기에 얽매여 있지 말고, ‘섬김과 초청’을 통해 불신자들의 호감을 얻으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인도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라! 섬김과 초청 속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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