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널판.
출애굽기 26:15~29
"놋 갈고리 쉰 개를 만들고 그 갈고리로 그 고를 꿰어 연결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그 막 곧 휘장의 그 나머지 반 폭은 성막 뒤에 늘어뜨리고 막 곧 휘장의 길이의 남은 것은 이쪽에 한 규빗, 저쪽에 한 규빗씩 성막 좌우 양쪽에 덮어 늘어뜨리고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 지니라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각 판의 길이는 열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반으로 하고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쪽을 위하여 널판 스무 개를 만들고 스무 널판 아래에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지니 이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지며 성막 다른 쪽 곧 그 북쪽을 위하여도 널판 스무 개로 하고 은 받침 마흔 개를 이쪽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 저쪽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으로 하며 성막 뒤 곧 그 서쪽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 개를 만들고 성막 뒤 두 모퉁이 쪽을 위하여는 널판 두 개를 만들되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 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쪽을 다 그리하며 그 여덟 널판에는 은 받침이 열여섯이니 이쪽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요 저쪽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니라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이며 널판 가운데에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 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c) 기둥과 휘장.
출애굽기 26:31~37
“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그 휘장 바깥 북쪽에 상을 놓고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할지며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그 휘장 문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 개를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
기둥은 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섯 개,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는 네 개로 세워져 있으며, 히브리서 9:3에서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을 둘째 휘장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휘장은 베실에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 형상의 수를 놓았으며 네 기둥의 갈고리에 늘어뜨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휘장은 하나님의 거룩한 수호를 상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성품을 보여줍니다.
휘장은 지성소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지성소에는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짐승의 속죄 피를 갖고 들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곳입니다.(히브리서 9:7) 대제사장도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발에 끈을 묶고 들어갔습니다. (죽을 경우에 줄을 당기기 위함입니다.)
휘장 안의 지성소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이유는,
그곳에는 하나님 자신이 임재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었습니다.(출애굽기 19:24) 그래서 하나님은 그룹으로 하여금 지성소를 지키게 한 것입니다.
그룹은 천사를 가리키는데 천사는 직책에 따라 나뉩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수호하는 천사(창세기 3:23~24), ‘스랍’은 하나님 보좌 주위에서 수종을 드는 천사이고,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천사, ‘미가엘’은 영적 전투를 맡은 천사입니다.
하나님이 둘째 휘장에 그룹을 수놓게 한 것은 지성소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천사로 지키게 한다는 사실을 나 내줍니다.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합니다.(히브리서 10:19~20) 그래서 휘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찢어졌습니다.(마태복음 27:50~52, 마가복음 15:37~38, 누가복음 23:45)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인이었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인데, 그런 우리를 예수님이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우리의 죄가 씻겨지고 예수님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에베소서 3:12)
휘장에도 첫째 휘장과 마찬가지로 네 가지의 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영광을 나타냅니다.
d) 등대
출애굽기 25:31~39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지니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성막의 출입구를 지나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왼편에 있는 것이 등대입니다. 등대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잔불을 켜서 성소 안을 밝히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레 24:3). 등대는 말씀에 나오듯이 한 달란트로 만들어지는데 한 달란트는 34kg입니다.
등대는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수 있으나 대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등대는 금을 녹여서 만든 것이 아니라 망치로 두들겨서 만들었습니다. 침을 받음으로 더욱 값진 기구가 되었으며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며, 요한복음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였기에 등대와 같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등대의 원줄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등대의 가지들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1:20, 요한복음 15:5를 통해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등잔은 등대를 보게 해 주며, 지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과 진설병을 비추는 역할을 하며 제사장들이 등대의 도움을 분향단 사역을 하게 됩니다.
e) 진설병상
출애굽기 25:23~30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르고 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 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붙이라 이는 상을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순금으로 만들며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진설병상은 떡을 차려 놓는 상입니다.
떡을 담는 대접과 숟가락, 떡에 바르는 유황을 담을 병과 포도주 잔까지 모두 정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 생명의 제공자가 되실 것을 예표 합니다(요한복음 6:35,48,58)
곧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또한 이것을 알리는 표적입니다.
생명의 떡을 먹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요한복음 6:53~58)
떡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신명기 8:3에 “사람이 육신의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떡은 안식일마다 새로 갈고 물리게 하였는데, 물린 떡은 제사장들과 그의 후손들이 회막 뜰에서 먹었습니다.(레위기 24:8~9) 그렇기에 우리는 매 주일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특히 죄성과 인본주의가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베드로전서 2:2) 그래서 진설병에는 꿀이나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진설병은 제사장들이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는다고 하였습니다.(레위기 24:9) 그 시간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교제하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설병은 교제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모든 교제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기쁨이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희생과 고난이 화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나누는 교제가 참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진설병은 2줄로 6개씩 12개가 올려져 있습니다.(레위기 24:6) 그것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거둔 곡식을 바친다는 상징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드림으로 생명의 떡이 되어준 것처럼 이스라엘 자신도 온전히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로마서 12:1) 그러기 위해서 고난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인격과 변화된 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자신이 깨어지고 부서져 고운 가루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드려질 떡이 됨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f) 분향단
출애굽기 30:1~10
“너는 분향할 제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길이가 한 규빗, 너비가 한 규빗으로 네모가 반듯하게 하고 높이는 두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이어지게 하고 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 면과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를지며 금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쪽에 만들지니 이는 제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분향단은 향을 피우는 곳입니다. 제사장들이 매일 등불을 끌 때와 켤 때에 향을 사르는 곳입니다.
그 향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인 언약궤와 속죄소 앞에서 올라가는데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밤낮 쉬지 않고 기도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입니다(로마서 8:26).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못했을 지라도 우리를 변호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요한일서 2:1).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 보좌에 향처럼 올라가며 하나님은 그 기도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듣는 것처럼 들어주시고 응답하십니다. 분향단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언약궤와 속죄소 바로 앞에 위치한 것은 성도의 기도생활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생활입니다. 향은 자기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 지시한 방법대로 만든 향만 사용해야 합니다. 곧 우리의 기도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안되며, 믿음으로 하지 않는 중언부언하는 기도나 주술적 의미를 가진 습관적인 기도도 옳지 못합니다(마태복음 6:5~7).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와 의와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마태복음 6:25~33, 야고보서 4:3).
기도는 우리의 영적 호흡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잠시라도 중단하면 우리 영혼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사탄에게 지게 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베드로전서 5:8) 기도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명력이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능력입니다(마가복음 9:29).
g) 언약궤
출애굽기 25:10~22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언약궤는 증거궤 혹은 법궤라고도 불립니다.
언약궤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8:9과 역대하 5:10에 보면, 언약궤 안에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나와있으나, 히브리서 9:4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 그리고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이 있다고 나옵니다.
어떤 학자들은 두 가지의 물건이 없어지고 두 돌판만 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겼을 때에 하나님은 그 법궤를 스스로 지킨 것을 볼 때, 궤 안에는 처음부터 두 돌판만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사무엘상 5:1~8, 6:19) 또한, 출애굽기 25:31, 16:33~34, 민수기 17:10을 통해서 만나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궤 안에 두라 하지 않고 궤 앞에 두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히브리서에는 세 종류가 다 안에 있었다고 한 것은, 사실 여부의 관심보다는 언약궤와 관련하여 표징으로 보관되었던 물건들이 무엇인지가 중요했고,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궤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히브리서 기자의 의도대로 그것들이 예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ㄱ) 십계명이 적혀 있는 두 돌판.
율법은 그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율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범죄 한 인간이 율법의 정죄에 의해 죽었을 때, 예수님은 그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의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율법의 정죄와 형벌을 이기시고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ㄴ) 아론의 싹 난 지팡이.
하나님은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의 역할은 백성들이 죄를 지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이 죄 사함을 얻도록 중보 역할을 하는 직분입니다. 대속죄일에 속죄 피를 가지고 지성소 언약궤 뚜껑의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과 화목케 합니다. 그 대제사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히브리서 6:20)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없이할 수 있고 하나님과 화목시킬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14:6, 사도행전 4:12, 고린도후서 5:18)
ㄷ) 만나.
출애굽기 16:33~34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대로 표징으로 삼게 하려고 항아리에 한 오멜의 만나를 담아 언약궤 앞에 보관하도록 하였는데 이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6:49~50에 이스라엘 조상들은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채는 언약궤의 고리에서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채를 언약궤에서 빼지 말고 항상 두게 한 것은 하나님이 언제 이동을 명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이 이동하면 즉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나아갈 때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었던 언약궤가 가장 중심에서 갔듯이, 우리의 생활 중심이.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전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고린도전서 1:27~2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할 때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언약궤를 들고 갈 때 동물이나 수레를 이용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이 어깨에 메고 가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성과 영혼이 있는 인간에게 섬김 받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사역의 성공이 아닌. 우리의 마음,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우리의 물질, 건강, 지식, 명예, 은사가 아닌 우리 자신의 섬김을 원하 십니다.
'학문적인 >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공부] 성막에 대해서 #1 (0) | 2020.08.10 |
---|
댓글